9. 일 행 선 사
밀교의 인물인 일행(一行)을 선사(禪師)라고 칭하는 것은 그가 선종(禪宗)에서 출가하였기 때문이다. 683 년 위주의 창락(昌樂 : 하남성의 남쪽)에서 태어난 그의 속성은 장, 이름은 수라고 했다.
지금까지 언급했던 당대(唐代) 밀교인물이었던 금강지, 선무외. 불공등이 인도인이었거나 서역지방사람이었던 점과는 달리 일행선사는 중국인으로서 중국땅에 밀교를 정착시키는데 큰 공적을 남겼던 사람이다. 즉, 그때까지 외래인(인도인, 서역인)의 활약에 의해 전파되고 확대되어가던 이국풍(異國風)의 밀교를 중국인에게 친밀감을 갖게 중국화한 중국인이 바로 일행선사인 것이다.
이러한 일행선사는 염국의 귀족이었던 공근의 자손으로 아버지는 목축을 맡은 태복(太僕) 이라는 벼슬에 있었고 이름은 승름이라 했다. 어머니는 농서의 이(李)씨 출신으로 일행을 잉태하였을 때 이마위에 두 세치의 흰빛이 나타났으나 일행을 낳자 그 빛은 아들의 이마에 옮겨갔다고 한다. 일행은 어릴 때 부터 총명하고 특히 기억력이 비상하여 책을 한번 읽으면 다시 보지 않아도 그 내용을 암송할 수 있었다.
그러한 그가 촌음을 아껴서 공부하였기 때문에 일반 모든 학예에 빼어난 재능을 가진 귀재였음을 일행선사 전기(傳記)는 전하고 있다. 때문에 이러한 재능을 살려 중국의 전통적인 학문에 통달하였는데 특히 도교(道敎)에 통달해 있었다.
당시 유명한 도사였던 윤숭(尹崇)에게서 양웅(楊雄)의 「대현경(大玄經)」을 빌어 연구하고, 그 성과를 간추려 「대연현도(大衍玄道)」와 「의결(義決)」을 저작해서 윤숭을 놀라게 했다는 이야기는 일행선사의 도교에 대한 조예의 깊음을 짐작케 하는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와같이 젊을 때부터 중국의 전통적 학예를 습득하고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일행은 21세 때 갑자기 부모를 연이어 여의게 되었다. 이것은 영명한 젊은 일행에게 있어서는 크나큰 충격이었다. 죽음과 삶에 대한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유한한 현실적 삶에 많은 염증을 느꼈을 것이다. 영원하고 참된 삶이란 무엇인가를 추구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출가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활연히 세상을 싫어하여 방외(方外:출가)의 마음을 품었다』 고 「내증혈맥보」에서 그의 출가동기를 말하고 있다. 처음 그는 형주의 경선사 홍경에게 출가했다. 이어 형주 옥천사 신수선사(神秀禪師)의 제자이며, 북종선(北宗禪)의 제7조인 숭산의 선승(禪僧) 보적선사(普寂禪師)를 스승으로 삼고 선 (禪)을 구명하여 그 속뜻에 통달하고 혜진(惠眞)으로 부터 율과 천태학을 배웠다.
2) 밀교와의 만남
한동안 일행은 형주의 옥천산(玉泉山)에 머물렀으나 그의 명성이 널리 퍼져 명성을 듣게 된 현종황제로 부터 칙명을 받게 되었다. 717년 입경한 선사는 광태전 (光太殿)에서 살면서 예종, 현종의 청에 의해 경서를 편찬하기도 하고 잃어버린 서적을 찾기 위해 집현원(集賢院) 에 있기도 하였다. 그러한 후 그는 흥당사(興唐寺)로 거처를 옮겼다.
그러던중 719년 인도에서 건너온 금강지삼장이 입경하여 적극적인 밀교선포활동을 하게 되었다. 금강지삼장은 거처하는 절마다 관정도량을 세워서 사람들을 밀교와 결연시키는 등 열렬한 교화활동을 하였던 것이다. 여기에 지적 호기심이 강한 일행선사는 금방 밀교에 매력을 느끼고 금강지삼장 에게서 관정을 받은 후 그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이러한 일행선사의 밀교에의 관심은 대일경계 밀교를 금강지삼장보다 3년전에 중국에 전해왔던 선무외삼장에게로 쏠리게 되었다. 선무외삼장과 함께 화엄사로 싼스크리트 원전을 찾으러 가기도 하고, 724 년에는 낙양에서 선무외삼장이 「대일경」을 번역하는 자리에 나아가 필기도 하고 여러가지를 거들었다. 또한 선무외삼장으로 부터 「대일경」을 강의 받고 그것을 기초하여「대비로자나성불경소(대일경소)」를 저작하기도 하였다.
일행선사는 이렇게 「대일경」을 번역하고 「대일경소」를 저작한 업적에 의해 대일경계밀교의 전문가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일행선사는 밀교와 접촉한 기간이 너무 짧았다. 719년 금강지를 통해서 밀교와 만났던 일행히 727년 그 생애를 마칠 때 까지 밀교와 인연한 것은 불과 8년간의 기간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중국 고대의 여러가지 학문에의 통달과 현종황제로부터의 두터운 비호, 당시 궁중내에서 막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던 도사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외래풍(外來風)의 밀교를 중국화하는데 큰 공적을 남겼던 인물이다.
3) 일행의 밀교특색
일행선사는 여러 밀교아사리들과는 다른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그의 학풍이 상당히 고증적(考證的)이고, 엄밀하였다는 점이다. 원래 여러 방면에 소질을 갖고 있던 그는 선, 천태, 계율, 밀교에 통달한 불교학자일뿐만 아니라 도교, 역학, 수학에도 탁월하였으며 특히 「개원대연력」을 작성한 천문학자로서도 현재에 이르기까지 불후의 명성을 얻고 있다. 이러한 그의 자연과학자적 학풍이 밀교의 연구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할 것이다.
둘째, 그에게는 부법(付法)의 제자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셋째, 일행선사의 전기에는 다른 밀교 아사리의 전기와 비교해서 기적담이 적다는 점이다. 이것 또한 일행이 밀교행자 내지 밀교 아사리로서 보다도 학자적인 성격을 많이 갖고 있었던 것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4) 임 종
일행선사의 임종은 737년 10월 8일의 일이다. 9월부터 장안의 화엄사에서 중병으로 자리에 누운 일행은 현종황제의 각별한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45세의 짧은 생애를 조용히 마쳤다. 그의 임종을 슬퍼한 현종은 칙명으로써 영혼을 망극사에 머물게 하고 탑을 세워 대해(大慧)선사라 시호하고 손수 비명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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