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용맹보살(龍猛菩薩)
1) 생애
용맹이란 말은 산스크리트어의 나아가아르주나(nagar junah)를 한역한 것인데 구역(舊譯) 에서는 이것을 용수(龍樹)라 번역한다. 용맹보살의 출생연대에 대해서는 많은 설(說)이 있으나 대략 2∼3C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나집(羅什 344 ∼ 413)에 의해 번역된 「용수보살전」과 길가야와 담요에 의해 번역된 「부법장인연법」제5 에는 용맹보살의 젊은 시절을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는 남쪽 인도의 비달바국의 유명한 바라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적 부터 총명하여 바라문교의 학문뿐만 아니라 천문, 지리, 의학, 역수(曆數)등의 모든 학예를 체득하고 각 부분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청년시절에 동무 셋과 의논하여 은신술로써 왕궁에 들어가 여관(女官)을 모조리 범했는데 탄로되어 그 만이 겨우 도망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래서 정욕이 고(苦)의 원인이라고 깨닫고 입산(入山)하여 불탑을 참배하고 계(戒)를 받아 출가하여 90일 동안에 소승경전을 모조리 다 읽었다. 다시 히말라야 산중의 한 노승한테서 대승경전의 가르침을 받았으나 그 깊은 의미를 깨닫지 못하였다. 때에 용왕이 있어 그를 용궁으로 데려가 칠보장 (七寶藏)을 열어 모든 대승의 경전들을 용맹에게 주었고. 용맹이 이를 받아 독송하기를 90일 만에 비로소 대승의 깊은 가르침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현장삼장 (玄裝三藏)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제10에는 제바(提婆)가 용맹보살의 곁에 와서 사사(師事) 한 경위를 중심으로하여 서술하고 있다. 대승경전에 통탈하게 된 용맹보살은 요살라국의 수도에 이르러 도성(都城) 남쪽 가람에 머무르면서 그의 의술에 의해 장수하게 된 인정왕(引正王)의 귀의를 받아 그 가르침을 널리 펴게 되었다. 최후에는 인정왕이 산 전체가 암석 (崙石) 으로 이루어진 흑봉산(黑峰山)의 옥력(玉曆)을 깎아 대가람을 건립였는데 자금이 부족해서 곤란을 겪고 있을 때에 용맹보살이 연금술로써 원조하여 그것을 세웠다고 한다. 그 가람은 중각오층(重閣五層)으로 되어 있는데 각층은 다시 4원(四圓)이 있어 그 장엄함이 비할데 없었다 한다. 용맹보살은 이 곳에 머무르면서 많은 논석(論釋)을 저술히였다.
3C말 경에 그가 입적(入寂)하자 남인도의 여러나라에서 그의 묘를 세우고 마치 부처님들 공경하듯이 받들었다고 한다. 그의 저서는 대지도론100권, 중관론 4권, 십이문론 1권, 십주비바사론 14 권등 20여부 160여권이 현존하고 있다.
2) 남천의 철탑(南天鐵塔)
용맹보살이 밀교와 처음 만나기는 남천의 철탑에서 였다. 이에 대해 금강지삼장의 구두진술을 불공삼장이 기록해 두었다는 「금강정경의결」을 바탕으로 해서 「부법전」이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남천축(남인도)에 큰 철탑이 하나 있는데 아주 튼튼한 철쇄로 잠겨져 있어 석존입멸후 수백년간 능히 이 탑을 열 수 있는 자가 없었다. 이에 용맹보살이 대일여래의 진언을 지송하니 허공중에 무량하고 광대한 몸을 나타내 무한한 법문과 문자장구(文字章句) 를 설하는 자가 있었다. 그것을 차례로 사경(寫經)하니 「비로자나염송법요」 1권이 되었다. 때에 용맹보살은 진언을 되풀이하여 외우며 그 탑앞에 이르렀다. 7일간 탑주위를 돌면서 대일여래의 진언을 염송하고 탑 열기를 기원하면서 7개의 겨자씨로 탑문을 때리니 홀연히 그 문이 열렸다. 그러나 탑안의 모든 금강신(金剛神)이 놀라서 일시에 분노하니 그 탑 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탑안은 향화등명(香華燈明)이 널리 비치고 명화(名花)와 보개(寶蓋)등이 충문하였고 찬가(讚歌)의 소리도 들리고 있었다. 용맹보살이 지심으로 참회하고 대서원을 발하니 여러 금강신이 나타나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답하여 말하기를 여래멸후 사견(邪見)으로 일으킨 대승의 교법이 이제 멸하려 하고 있는데 이제 탑 내에 삼세여래가 설하는 교법이 있다함을 들었나이다. 원컨데 그 교법을 수지하여 많은 사람들을 구제코자 하나이다. 그러함에 금강신은 탑내에 그의 입장(入場)을 허락하였다. 용맹보살이 들어가고 나니 탑문이 닫히고 중앙을 보니 바로 영원하게 계시는 대일여래의 법계궁전이 있었다. 거기에는 제불보살이 머무르고 있었다. 거기에서 용맹보살은 금강살타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금강살타의 관정가지 (灌頂加持)를 받게 되었다. 탑을 나와 그것을 세계에 유포하니 이것이 밀교가 세간에 유전(流傳)하게 되는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3)역사상 최초의 입교인물
남천철탑의 이야기로 해서 용맹보살은 밀교상승에 있어 부법(付法) 제3조, 전지(傳持) 제1조로 위치하면서 역사상 최초의 밀교인물로 언급되고 있다. 밀교의 가르침은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즉 대일여래가 직접 설법한 것이다. 그리고 그 설법은 비밀한 것이기 때문에 금강살타보살만이 그 설법을 들을 수 있다. 그래서 밀교에서는 항상 대일여래가 금강살타보살에게 법을 주고 그 법을 받은 금강살타보살이 중생에게 전해준다는 부법(付法)의 형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래서 대일여래라든가 금강살타보살은 신앙상, 이론상의 절대자일 뿐이지 역사상의 인물은 아니다. 실재했던 인물은 아닌 것이다. 이러한 신앙상의 금강살타로부터 직접 대일여래의 법을 전해 받고 관정을 받은 실재했던 최초의 인물이 바로 용맹보살(龍猛菩薩)인 것이다.
그러한 과정이 바로 남천철탑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런데 남천철탑의 이야기는 대단히 신화적인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사실적 측면에서는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신앙상의 금강살타로 부터 실존의 용맹보살이 법을 전해 받는 과정을 설명함에 과연 사실적 입장만을 주장해야 하는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겉으로는 숨겨져 있는 속 깊은 의미를 찾아보는 것이 밀교의 입장이라면 남천철탑의 이야기는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우리 인간이 본래 대일여래의 설법을 들을 수 있는 잠재적 능력을 갖추고 있는데 그 잠재적 능력이 보리심이고 그 보리심의 본체가 금강살타라고 한다면 금강살타로 부터 법을 전해 받는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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