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선무외 삼장(善無畏 三藏)
(1) 대일경의 최초 한문번역자
「밀교」라고 하는 이름이 인도에서 정식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대일경」과 「금강정경」이 성립하던 7C경 부터이다.
그 이전의 여러 경전에서는 밀교적 요소를 부분적으로 갖고 있기는 하였지만 체계화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하던 것이 「대일경」, 「금강정경」이 성립되면서 조직적으로 통일성 있게 체계화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해서 그 이후를 순수밀교(純密), 그 이전의 밀교적 요소를 잡부밀교(雜密)이라고 부르고 있다.
우리가 흔히 「밀교」라 했을 때는 이러한 순밀인 조직적인 밀교를 말하는 것으로 「대일경」과 「금강정경」은 조직적 밀교의 근간이 된다고 할 수 있는 경전들이다.
그러한 「대일경」을 중국에서 최초로 전하고 한문을 번역한 사람이 인도승려 선무외삼장(善無畏三藏)이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선무외삼장을 대일경계 밀교를 최초로 중국에 전했던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2) 정사자(淨獅子)
선무외삼장의 산스크리트이름은 슈바카라싱사이다. 이것은 「아름답다, 깨꿋하다, 희다, 착하다」는 뜻을 가진 슈바카라와 사자(獅子)란 뜻의 싱하가 합쳐진 「깨끗한 사자」「훌륭한 사자」의 의미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 말을 「선무외 (善無畏)라고 번역한 것은 사자가 모든 짐승의 왕이므로 겁나는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함이 정설로 되어 있다.
3) 출가동기
선무외삼장은 중부 인도 오다국(烏茶國)의 불수왕(佛手王)의 아들로 태어났다. 날 때부터 신이한 모습과 가지가지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부왕은 일찍부터 후계자로 지목하고 있었다. 10세 때에 군대를 통솔케 하였더니 훌륭히 그 임무를 완수하여 그 소질을 인정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13세가 되던 해 왕위를 물려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를 질투한 형들이 병란(兵亂)을 일으켰기 때문에 마지못해 형과 싸울 수 밖에 없었고 결과는 반란군의 진압으로 끝나게 되었다. 형을 단죄해야 하는 자신의 운명 앞에 삼장은 고민을 하다가 드디어 모후(母后)와 대신들 앞에서 왕위를 형에게 물리고 자신은 출가하고 싶다고 선언을 하게 된다.
부왕의 총애로 형을 제치고 왕위를 이었으나 그것이 형제와의 싸움을 유발시킨 원인이 되었음을 견디지 못하고 출가를 재촉하게 된 것이다.
4)달마국다로부터 사사
출가생활을 시작하게 된 삼장은 처음에는 남방의 해변에서 법화삼매에 들었으나 그 뒤 여러 곳을 다니면서 선관(禪觀)을 닦은 뒤 중부인도의 나아란다정에 들어갔다. 여기에서 대승불교와 밀교에 통달한 학승(學僧) 달마국다를 만나게 된다. 달마국다의 나이는 800세였지만 실제 얼굴은 40세 정도 밖에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선무외삼장은 이 달미국다 아사리에게서 다라니, 인계, 유가삼밀(瑜伽三密)의 가르침을 전수받고 그날 관정을 받아 인간계와 천상계의 스승이되어 삼장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여기서 얼굴은 40세 밖에 안보이나 실지는 800세 였다고 하는 달마국다에 대한 설명이 얼굴은 30세, 실지는 700세인 바라문의 스님으로 용맹보살의 제자라는 인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현장삼장의 전기중의 기술과 상당히 닳은 점이 많음을 볼 수 있다. 현장전기외 인물을 용지보살로 보고 있는 까닭에 달마국다를 이러한 이유로 해서 용지보살과 동일인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선무외삼장을 용지보살의 제자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5) 당나라로 향함
달마국다로부터 밀교를 전해 받은 삼장은 그 뒤 중부인도를 여행하면서 눈부신 활약을 시작한다. 이렇게하던 어느날 스승인 달마국다에게서 「너는 지나(支那-중국)」와 인연이 깊으니 가서 교를 펴라」는 권고를 받고 전법(傳法)을 위해 육로를 통해 당나라로 가게 된다.
선무외삼장이 실제 수도인 장안에 들어가게 된 것은 현종이 통치를 하던 716 년의 일이다. 이 때에 삼장의 나이 80세. 처음에는 칙명에 의해 흥복사의 남원(南院)에 거(居) 하였으나 뒤에 장안의 서쪽 연강방에 있는 서명사(西明寺)로 옮겼다. 그 사이에 제왕에게서는 두 세번에 걸친 이 노령인 고승의 건강을 염려해서 사자(使者)를 보내고 늘 색다른 선물을 보낼만큼 융숭한 대우를 받았다고 「송고승전」은 전하고 있다. 다음 해에 「허공장구문지법」을 번역하였는데, 그후 735년 입적한 때까지 무릇 20년간 밀교경전을 번역하는데 전심(傳心) 하였다.
732년에 고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제왕에게 원했으나 허락이 나지 않고 735 년 11월 7 일 99세의 고령으로 선실(禪室)에서 입적했다. 현종황제도 그것을 슬퍼해서 홍려경이라는 이름을 주고, 일부러 홍려승인 이현(李現)을 파견하여 장의를 준비케하고 빈율사로 하여금 장의를 맡게하여 정중히 장사했다. 제자로는 보사, 명사, 일행, 의림, 지엄, 희무외, 신라의 현초, 불가사의 , 일본의 도자등이 있고 속세제자로 이화(李華)가 있다.
6) 번역서
「허공장구문지법」, 「대일경」, 「소바호동자경」, 「소실지갈라공양법」, 「금강정경비로자나일백팔존법신계인」, 「지장보살의궤」, 「견로지천의궤」, 「파지옥의궤」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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