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³о☆ [卽身 成佛]/♡ 密敎資料室...!

♡ [密敎人物思想史 11] - 혜일대사(慧日大師) ♡

♥ VajraYana ♥ 2012. 8. 2. 01:52

 

11. 혜일대사(慧日大師)


1) 신라의 밀교

7C경 인도에서 대일경, 금강정경이 성림됨으로 말미암아 밀교가 체계적으로 정리되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7C 이후의 밀교를 순수밀교(순밀)라 하고 그 이전의 밀교적 요소를 잡부밀교(잡밀)라 한다는 것은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순수, 잡부의 밀교는 불교가 중국으로 전래되면서 더불어 전래되었는데 금강지와 선무외가 대일경, 금강정경등의 경전을 전함으로써 순수밀교는 중국에 그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다.

여러 밀교전법자들에 의해 중국땅에 맹위를 떨쳤던 밀교는 다시 혜과의 법을 이어 받은 일본의 공해(空海)가 일본에서 진언종(眞言宗)이라는 종파를 성림시킴으로써 일본불교의 근본을 이루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떠한가. 신라의 밀교승려들이 밀교를 전래 하였다는 기록들이 약간씩은 보이나 그에 대한 자료들이 거의 없어 그 사정을 정확히 추정하기란 어려운 실정이다. 그 자료들 가운데 우리나라의 것으로는 오로지 「삼국유사」에 의존하는데 여기에서는 신라의 명랑법사, 혜통국사의 행적만이 약간 보일뿐이다.

그러나 명랑법사가 전한 밀교는 잡부밀교계통이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며, 혜통국사가 전래한 밀교는 순수밀교이냐 잡부밀교이냐에 대한 논의가 아직도 미해결의 상태이다. 그것은 혜통국사의 행적중 혜통이 순수밀교를 선무외에게서 전해받았다는 점에 강조를 하면 순밀을 전래한 것이 되며 해통의 입당귀국연대(入唐歸國年代 AD 662∼665)과 에 중점을 두게되면 선무외의 내당(來唐) 활동기간(AD 716∼735)과 맞지않아 순밀을 전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외 중국자료들을 참조로 해 볼 때 열거할 수 있는 인물로서 의림, 현초, 오진, 불가사의, 혜초, 균량, 혜일등인데 이들은 대부분 신라에 밀교를 전래한 사실이 불분명하거나 혹은 중국에서 입적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가운데 비교적 혜일(惠日)은 순수밀교를 신라에 전래한 것이 뚜렷한 듯하다.

그래서 「대당청룡사 삼조공봉 대덕행장(大唐靑龍寺三朝供奉大德行狀) 1권」, 「앙부대법상승사자부법기(兩部大法相承師資付法記) 상하2권」, 대당청룡사고삼조국사혜과화상비명(大唐靑龍寺三朝惠果和尙碑銘)」등에서 나타난 혜일대사(慧日大師)의 기록을 정리해 보기로 한다.

2) 혜과화상의 제자 혜일대사

혜일대사의 속성(俗性)에 대해서는 아직 미상이다. 따라서 그의 가계에 대해서도 역시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혜일대사는 신라 선덕왕 2년, 당 덕종 2년, AD 781년에 입당(入唐)하여 청룡사의 혜과화상으로부터 밀교의 법을 배우게 되었다. 혜일대사의 입당구법(入唐求法)은 본국인 신라에 있을 때 부터의 간절한 원이 성취된 것이다. 그가 언제나 불법을 구함에 게을리 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고 있을 때, 갑자기 공중에서 대당국 청룡사에 비밀법이 있다. 라는 소리를 듣고 구법(求法)의 길에 올라 망망한 대해(大海)와 험한 산길도 멀다 않고 이역만리의 청룡사로 혜과화상을 찾아 밀교를 배우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법을 갈구하는 그의 구도심이 지극했음을 나타내는 예라 할 것이다.

이렇게 혜과화상의 문하(門下)에 들어간 혜일은 청룡사 관정도량에서 태장계의 수명관정(受明灌頂)과 금강계의 수명관정을 받고 곧이어 전법아사리위의 관정도 받게된다. 수명관정이라 함은 제자위(弟子位)의 관정을 말하는 것으로 이 관정을 받으면 밀교의 법을 수행할 제자로서의 자격을 갖게 되는 것이고, 전법관정(傳法灌頂)은 스승의 위()를 인정받는 것으로 이 관정을 받으면 스승의 자격으로 제자들에게 비밀의 법문을 전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진언문(眞言門) 최고의 위인 금, 태양부(金,胎兩部)의 전법아사리위의 관정을 혜일대사는 이른바 밀교아사리로서 위치하게 된 것이다. 이때 금강계, 태장계 양부의 대법(大法) 뿐만 아니라 소실지법(蘇悉之法)과 그외 제유가삼십칠존(諸瑜伽三十七尊)까지도 모두 다 전수받아 통달했다고 한다.

3) 신라에 밀교를 전함

이렇게 밀교의 모든 법에 통달한 혜일대사는 신라에 밀교의 경전을 전하고 밀교의 신라홍포에 힘썼다. 그러나 그가 언제 귀국하여 밀교를 전래하는지는 확실치 않다. 대개 AD 805년 전후로 추정해 보는 학자도 있다.

혜일대사가 전래한 법의 내용은, 명랑과 혜통이 사상(事相)에 관한 것이 주가 되었다면 사상(事相)과 교상(敎相)을 동시에 전래한 것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교상(敎相)이라 함은 이론적인 철학을 말하고 사상(事相)이라 함은 실천적 종교를 말한다. 바꾸어 말하면 교상은 사상의 철학적인 가치를 이치(理致)로써 나타내고, 사상을 종교적인 실천을 행()으로써 교시(敎示)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상은 교리적인 방면을 말하는 것이고, 사상은 실천적인 방면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둘은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다.

그러나 명랑과 혜통은 그 가운데서도 사상적인면에 치중하였지만 혜일대사는 이 둘을 동시에 전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혜일대사의 활동은 명랑과 혜통이 전래한 밀교의 바탕 위에 신라국내에 밀교의 황금시기를 이루게 하였던 것이니, 일본의 공해에 필적할 신라의 인물로서 바로 이 혜일대사(慧日大師)를 말하는 이도있다.